보라카이 (2019.04.26 ~ 2019.04.30)
3일 차에는 말룸파티를 가느냐 마느냐의 고민이 있었다. 여차 저차 하여 가지 않았다.대신 보라카이에서 액티비티를 즐기기로 했다. 그러려면 든든히 먹고 가야지!
먼저 패들 보드를 또 타기로 했다. 전날에 흥정은 실패했지만 시세 파악에는 도움이 되었다. 다시 인당 500페소로 1시간 도전에 나섰다. 혹시 몰라서 인당 600페소를 챙겨가긴 했다.
전날 이용했던 곳과는 다른 대여점에 갔다. 1시간에 얼마냐고 물으니 역시나 600페소란다. 돈 없으니 500페소에 해달라고 했더니 약간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바로 안된다고 하지 않았다. 이러면 일단 절반 이상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나 성공. 500페소에 해주는 대신에 비밀이라고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전날 패들 보드를 타면서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수팩에 폰을 넣어서 가지고 나왔다. 방수폰+방수팩 조합에도 가급적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앉아서 노를 저으며 달리는 것도 재미있다. 근데 보드가 좀 큰 편이라서 중심 잡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수심이 얕은 곳도 충분히 넓어 빠져도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도전해봤지만 역시 한 번만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것은 참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애지중지 하던 폰도 방수팩과 함께 장렬히 입수하였다. 물론 방수팩이 다행스럽게도 불량이 아니라 전혀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해변가를 걷다 보면 많은 호객행위를 마주하게 되는데 방수팩을 파는 상인도 있다. 거기서 산 것은 아니고 국내에서 구매한 것이니 참고 바란다.
그래도 예전에 처음 탄 패들 보드에서는 몇 번 일어서다가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계속해서 일어서는 것을 시도해봤다. 나름 몇 번 노를 저으며 나아가기도 했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고 나머지 시간은 또 계속 앉아서 즐겼다.
그렇게 40분쯤 놀았을까? 괜히 1시간이나 빌렸나 싶을 때쯤에 어떤 까무잡잡한 남자아이가 내 패들 보드 옆으로 왔다. 보라카이에 거주하는 현지인이었다. 내가 패들 보드에서 내려서 쉬고 있는 동안 그 아이는 내 패들 보드를 완전히 점령했다.
나보고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그러니 아이스크림 사 먹게 100페소만 주면 안 되냐고 했다.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당연히 물 속이라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자 문득 해변가를 걷다가 본 광경 하나가 떠올랐다. 한 서양인이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돈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서양인은 지갑을 열은 채로 더 필요하냐고 더 줄까라고 묻고 있었다. 동정 같은 눈빛이 아니었다. 아이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내 표정은 어땠을까? 실제로 나는 낯선 이방인에게 친근하게 다가와주고 말을 걸어준 꼬마가 참 반가웠다. 하지만 어제의 이 아이가, 내일의 이 아이가 길에서 봤던 서양인의 돈을 건네받던 그 아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잘 주더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것이 버릇이 될 수도 있다.
필리핀 1인당 GDP는 약 3000달러이다. 우리나라 1/10에도 미치지 않는다. 100페소는 약 2200원으로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단순 계산했을 때 2만여 원의 가치이다. 초등학교에는 들어갔는지도 모를만한 꼬마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기 위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요구하기엔 큰돈이 아닐까?
반대로 생각하면 나한테는 별 볼이 없이 작지만 그 아이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패들 보드를 빌리고 남은 200페소가 해변가에 있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 순간 정말 현금이 없었다.
그러나 내심 마음에 걸렸다. 다시 만나면 100페소를 꼭 쥐어주고 싶었다. 나중에 호텔에서 씻고 나와서 혹시나 다시 만날까 살펴봤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특히나 더 마음에 걸린 이유가 있다. 그 남자아이가 내 패들 보드를 타고 놀고 있을 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자아이가 거의 울다시피 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와이프 패들 보드로 열심히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여동생이라고 했다. 아마 오빠가 노는 걸 보니 자기도 패들 보드를 타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울먹거리던 여자아이가 패들 보드에 올라탔을 때 신나서 기뻐하며 까르르 웃던 표정을 지울 수가 없다.
작은 것에도 너무나 행복해하는 5살짜리 아이의 모습을 보니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는 얼마나 또 행복해할지...
그 남자아이와 통성명도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부터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금방 잊어버렸다. 로난이었나? 미안해. 어쭙잖은 생각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못 사줘서.
그렇게 패들 보드를 반납하고 곧바로 예약해뒀던 패러세일링을 하러 갔다.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 내에 있는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보트가 얼마나 빠르던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액티비티였다.
베이스캠프에서 낙하산이 달린 모터보트로 갈아탔다. 보트가 출발하면서 낙하산과 연결된 줄이 기계에 의해서 점점 풀리는 방식이다.
출발하기 전에 직원이 '퐁당?' 이라길래 분명히 나는 'No 퐁당'이라고 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I can't swim.'을 'I can swim.'으로 들은 건지... 왜 퐁당시켰지?!
나는 착륙할 때 당연히(?) 바다에 빠질 줄 알았다. 바다에 착륙하면 꺼내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줄을 당기는 기계로 보트까지 다시 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안전제일 주의자, 다시 말하면 겁쟁이다. 당연히 높은 곳도 무서워한다. 이 날 확실해졌다. 낙하산이 최고점에 다다랐을 때 와이프는 평화롭게 즐기는 반면에 나는 무서워서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페러세일링의 가격은 인당 2000페소. 약 45000원이었다. 다음에는 45000원을 준다고 해도 안탈 것 같다.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씻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보라카이 자체가 크지 않아서 맛집 검색을 하면 사실 나올 수 있는 가게가 몇 개 없다. 그렇게 맛집으로 소개된 곳 중 발할라(Valhalla)라는 식당이 있었다. 마침 픽업 샌딩 업체에서 받은 15% 할인 쿠폰이 있기도 해서 방문했다.
치킨과 폭립 세트 메뉴를 시켰다. 이것만 해도 둘이서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하지만 수프를 좋아해서 추가로 애피타이저로 시켰다. 다만 메인 메뉴랑 같이 나와서 애피타이저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지나가던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아셨는지 그거(치킨&폭립) 맛있냐고 물어보셨다. 본인도 주문할까 하신다고. 맛있었다.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정말 한국 어딘가에서 먹어본 맛있는 폭립의 맛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1일 1 마사지 실천을 위해서 풋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할로 망고가 있어서 또 들렀다.
할로 망고는 국내에 진출해도 먹힐 것 같다. 다만 항상 더운 보라카이와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 특성상 겨울 메뉴도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여긴 전날 방문한 곳에 비하면 시설이 약간 더 좋은 편이었다. 카드 결제도 된다. 어깨까지 하지 않고 순수하게 발마사지만 한다. 자갈 같은 것으로 하기 때문에 시원했다.
1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고 디몰 근처를 돌아다니다 철판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그렇다. 또 먹었다.
차가운 철판에 아이스크림을 쭉 펴고 그걸 롤처럼 말아서 준다. 그냥 그게 특징인 것 같다. 맛있었지만 나는 할로 망고가 더 좋다.
디몰 근처에 작은 마트가 하나 있다. 나름 이 주변에선 큰 마트라고 해야 하나. 선물 사기 좋다고 해서 가봤는데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구경하러 가볼 수는 있지만 딱히 살만한 건 없었다. JOVY'S 바나나칩이 나름 유명한데 맛은 한국에 바나나칩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그거 말고 약간 네모난 모양에 얇은 바나나칩이 있는데 그게 더 맛있었다.
다음날은 귀국이라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저녁도 많이 먹었고 아이스크림도 두 번이나 사 먹어서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목이 말랐다. 마지막 날이니까 룸서비스 한 번은 시켜봐야지.
와이프는 생각이 없다고 해서 나 혼자 2잔을 시켰는데 커피는 반도 못 마시고 잠들었다. 약간 특이한 점은 룸서비스를 현금 결제하는 것이었다. 보통 디파짓에서 차감되지 않나? 잠깐 그러고 보니 디파짓 결제를 했었나?
이렇게 3일 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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